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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노무현: 매년 5월이면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

지파지파 2025. 5. 2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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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사람

오늘은 2025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입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마음이 먹먹해져요. 왜일까요? 단순히 한 정치인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뉴스를 보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탄핵, 내란, 분열... 이런 단어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문득 "그분이 계셨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2024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1위에 선정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겁니다. 31%의 국민이 그를 선택했어요. 재임 당시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원성을 들었던 분이 말이에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된 걸까요?

'바보'라는 별명에 담긴 진짜 의미

노무현 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죠. 이 별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아시나요?

2000년 16대 총선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서울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지역주의 벽을 넘겠다"며 승산 없는 부산 북·강서을로 뛰어들어 낙선했을 때였어요.

그때 한 네티즌이 안타까운 마음에 올린 글에서 처음 사용된 게 '바보 노무현'이었습니다. 삼성에서 근무하던 유증희 씨(현재 제주 거주)가 그 주인공이에요.

"편한 길을 내버려 두고 올곧은 한길을 걸어왔지만 계속 낙선해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온 표현이었죠.

청문회 스타에서 대통령까지

그의 정치 인생을 돌아보면 참 드라마틱합니다. 1988년 초선 의원으로 5공 청문회에 나섰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전직 대통령과 재벌 회장들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질의하는 모습이 국민들 뇌리에 강하게 박혔어요.

고졸 출신에 독학으로 사법시험을 패스한 그의 배경이 더욱 화제가 됐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은 이들에게 심어줬어요.

하지만 진짜 승부는 그 이후였습니다. 1990년 3당 합당을 반대하며 김영삼과 결별한 후, 그는 민주당계 정당에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어요. 영호남 지역주의가 극심했던 시절,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마찬가지였거든요.

원칙과 신념, 그리고 좌절

노무현의 정치철학은 명확했습니다. 지역주의 타파, 기득권과의 타협 거부, 서민을 위한 정치. 이런 신념 때문에 그는 수없이 좌절해야 했어요.

1998년 종로구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2000년 다시 "지역주의를 깨겠다"며 부산으로 돌아가 또 낙선했죠. 이때 생긴 게 바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예요.

당시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던 시절, 젊은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이었어요. "이 바보 같은 정치인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들이 모인 거죠.

대통령 시절의 명암

2003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 노무현은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까요?

긍정적 평가받는 부분들:

  • 권위주의 타파와 정경유착 척결
  • 재벌 개혁 단행 (상속증여세 포괄주의 도입 등)
  • 집단소송제 시행으로 기업 투명성 제고
  • 대기업 불공정 담합 처벌 강화

비판받았던 정책들:

  • 부동산 정책 실패
  • 소득분배 악화로 인한 양극화 심화
  • 햇볕정책의 한계
  • 외교 갈등과 국제적 신뢰도 하락

특히 그는 진보에게는 "신자유주의자"로, 보수에게는 "반미주의자"로 양쪽에서 모두 비판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였어요. 어찌 보면 그의 중도적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죠.

탄핵과 복귀, 그리고 시련

2004년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재임 중 탄핵 소추를 당했어요. 하지만 국민들의 반발이 거셌죠.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은 17대 총선에서 참패했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이 기각되면서 노무현은 복귀했어요.

이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솔직한 토로부터 "미국 엉덩이 뒤에 숨어서"라는 직설적 표현까지, 기존 대통령들과는 확연히 다른 캐릭터였죠.

봉하마을로 돌아간 평범한 시민

2008년 퇴임 후 노무현은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갔어요. 전직 대통령이 고향으로 낙향한 건 그가 처음이었어요.

봉하마을에서 그는 정말 평범한 농부가 되려 했습니다. 봉하오리쌀을 만들어 판매하고, 방문하는 시민들과 소탈하게 대화를 나누며... "사람사는세상"을 만들어가려 했죠.

현재 봉하마을은 노무현재단에서 관리하고 있어요. 2018년부터는 '대통령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사저를 상시 개방하고 있고요. 권양숙 여사는 봉하마을을 떠나 진영읍 내 다른 곳에서 거주하고 계시죠.

시간이 증명한 진실

왜 노무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리워지는 걸까요?

첫째, 그의 정치적 예언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박근혜를 당선시키는 것은 군사독재의 향수"라고 했던 발언을 기억하시나요? 당시엔 여론의 비난을 받았지만, 박근혜 정부의 탄핵을 보며 사람들은 그의 혜안을 인정했어요.

둘째, 그가 보여준 진정성과 소통 방식이 그리워서입니다. 권위적이지 않고, 서민적이며, 솔직했던 모습들이요.

셋째, 지금의 정치 현실과 비교되면서입니다.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려 했던 모습이 더욱 빛나 보이는 거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노무현을 완벽한 정치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정책 실패도 있었고, 아쉬운 부분들도 많았죠. 하지만 그가 추구했던 가치들 - 원칙, 소통, 서민을 위한 정치 - 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2025년 현재도 매년 5월 23일이면 봉하마을에는 노란 리본과 국화꽃을 든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져요. 올해도 어제(5월 22일)부터 16주기를 맞아 많은 추모객들이 봉하마을을 찾았답니다.

특히 오늘 16주기를 맞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봉하마을을 방문하며 "노무현은 없지만 모두가 노무현인 시대를 만들겠다"고 밝혔어요. 그는 "개인의 성공과 사회적 책무 사이에서 고민하던 연수원 시절, 노무현 인권 변호사의 특강이 인생의 방향에 빛을 비춰줬다"며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회고했죠.

이처럼 노무현이 남긴 정신적 유산은 여전히 많은 정치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건 단순히 한 정치인이 아니라, 그가 상징했던 '사람사는세상'에 대한 꿈이 아닐까요?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던 그의 소망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를 기억하는 거겠죠.

바보 같아 보였지만 가장 현명했던 정치인, 노무현. 그가 남긴 진짜 유산은 정책이나 업적이 아니라,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늘 이재명 후보가 말했듯이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노무현의 말처럼, 그의 정신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등대 역할을 하고 있어요.

특히 지금 같은 위기의 시대일수록 우리가 더욱 그리워하는 건, 바로 그가 꿈꿨던 '사람사는세상'이 아닐까요? 권력욕이 아닌 진심으로 국민을 위했던 마음,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았던 원칙,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하고 진정성 있었던 소통 방식까지...

16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그런 정치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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